옛 친구를 기억하며
친구 류스케에 대한 그래피아 아카데미의 한 화공의 기억

옛 친구를 기억하며

나와 류스케의 첫 만남은 벌써 수십 년 전의 일이다. 땡땡이친 학생을 잡으러 순찰하던 나는, 실내 정원에서 잠을 자던 신임 교사를 우연히 마주쳤다. 자칭 류스케라는 그 녀석은 가벼워 보이고 나태해 보였기에, 훗날 처자식을 위해 동분서주하던 남자나 낙원에서 명성을 떨친 대화공과 동일 인물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하기 힘들었다.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업계의 많은 「풍류객」들은 여전히 그래피아 가문의 데릴사위로 들어간 그에 대해 말이 많으며, 그의 미술품을 「자격 미달」이라 깎아내리곤 한다. 류스케 본인은 이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지만, 그의 친구로서 나는 과거의 이야기를 기록해 세간에 알림으로써 잘못된 사실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바티야에서 온 청년이 낙원 제일가는 교사이자 화공이 되겠다며 호언장담했을 때 난 박장대소했지만, 나는 곧 깜짝 놀라고 말았다. 학생을 위해 폭력배들과 치고받고 싸우는 미술 교사를 본 적 있는가? 얼마 후 공원파의 젊은 도련님 풀웨이브가 직접 학교에 찾아와 부하를 대신해 사죄하는 모습을 보고, 이사회의 거물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풀웨이브 씨가 패거리 두목을 위해 류스케에게 그림을 부탁하려 했지만, 류스케는 「너희에겐 과분해」라며 그 자리에서 거절했고, 둘은 이내 크게 웃으며 하마터면 또 한바탕 싸울 뻔했다. 세월이 흘러 수십 년이 지나 양아치들이 감히 이 녀석의 딸을 건드리고도 모르고 있다니, 화를 자초한 꼴이다.

그때는 많은 선생님과 학생이 그의 사무용 책상에 몰래 러브레터를 넣어두곤 했지만, 류스케는 모든 고백을 정중하게 거절했다. 그래서 이 녀석이 교장의 따님과 미래를 약속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땐, 마치 호랑이가 느긋하게 사과를 씹어 먹는 모습을 본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도 나중에 영을 문병하러 병원에 갔을 때야 그녀에게서 내막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영은 풍화의 저주가 발병한 뒤 병원에서 도망쳤는데, 가업을 잇기는 싫었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몰랐다. 그때 우린 정신없이 온 세상을 뒤지며 그녀를 찾아다녔는데, 누군가가 이미 그녀를 찾아내서 행적을 감추는 것까지 도와줬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

「당신을 알아요. 몇 년 전에 새로 온 선생님이잖아요. 당신도 아버지가 절 잡아오라고 보낸 건가요?」

「아니, 난 그저 산책하다 우연히 지나가는 길이었는데, 여자아이가 우는 걸 차마 볼 수 없었을 뿐이야」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그곳에 도착할 때까지 함께 가줄게」
청년은 소녀에게 그렇게 말하고는 그녀를 등에 업고 2차원 시티를 걸어 나갔다.

하지만 순정 만화 같은 전개도 그래피아 가문의 비극적인 결말을 바꾸지는 못했다. 난 가끔 아주 못된 생각을 하곤 한다——만약 류스케가 영과 결혼하지 않고, 그 모녀를 치유하는 데 자신의 미래를 전부 쏟아붓지 않았다면, 그가 평범한 사람들처럼 훨씬 잘 살았을지도 모른다고. 물론 그 대가로, 지금 같은 대화공은 될 수 없었겠지만 말이다.

여러 행성을 누비는 류스케는 지상의 우리보다 희극이든 비극이든 더 많은 이야기를 지켜봐 왔다. 그의 미술품은 언제나 세계를 향한 순수한 사랑으로 가득하다. 아무리 보잘것없는 사람이라도 그의 전시회에 들어서면 그 초대폭의 작품들 속에서 넘치는 기운을 엿볼 수 있다. 그곳엔 인류의 위대함이, 개인으로서, 집단으로서, 그리고 기나긴 시간의 과객으로서 세계를 향해 내지르는 불굴의 외침이 담겨 있다.

지금까지도 그는 여전히 우주 곳곳을 누비고 있다. 그가 무엇을 찾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친구로서 그가 소원을 이룰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