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투기꾼의 일기
환조종의 일기, 자신이 평생 어떻게 열심히 일하고 근검절약하여 100만 원보를 모았는지 기록되어 있다

어느 투기꾼의 일기

지난주에 막 2차원 시티에 왔는데, 나처럼 대학도 못 나온 젊은이는 일자리 구하기가 정말 힘들다. 그래도 난 힘은 세니까, 십장이 항구에 가서 운반공으로 일해보라고 추천해 줬다. 인력이 자동 운반기보다 싸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이 돈조차 벌지 못할 뻔했다. 어찌 됐든 18살에 안정적인 직장을 얻었으니, 난 정말 행운아다.
——1965

항구에서 일하는 이점을 이용해 공원파에 그림 도구를 운반해 주고 돈을 좀 벌었다. 순박한 청년이 공원파와 거래를 하다니, 좀 타락한 것처럼 들리겠지. 하지만, 하하, 장난해? 원보는 원보라고. 이 돈이면 먹자골목에 가게를 하나 얻을 수 있다.
——1969

「구시가지 스튜」가 어제 폐업했다. 요 몇 년 새 2차원 시티에 프랜차이즈는 점점 늘어나고 낯익은 얼굴들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전통적인 인정이 남아있는 사회는 거대 자본의 수레바퀴를 도저히 당해낼 수 없다. 진작 가게를 넘겼어야 했는데, 지금은 막대한 빚까지 떠안게 되었다. 그래도 괜찮다. 이제 겨우 서른이니까. 까짓것 부두로 돌아가면 그만이다.
——1977

10년 동안 택시를 몰면서 내 인생은 이대로 끝인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예전에 남들을 따라 샀던 코인이 전부 올랐을 줄이야. 「미친 고양이 코인」은 5배, 「초절정 미녀 코인」은 40배, 「아스다나 실현 코인」은 754배, 「내가 대충 지은 이름 코인」은 3만 배나 올랐다! 모든 코인은 폭탄 돌리기 같은 거품이니, 난 「계속 오르기」를 기다리지 않고 지금 당장 팔아치울 거다. 이제 남은 문제는 딱 하나다. 큰돈을 벌고 나면, 뭘 해야 할까?
——1987

우선, ≪산시로라는 남자, 죽기로 결심했다≫의 감독이신 팜케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를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불혹의 나이에 영화계에 갓 입문한 신인인 저에게 팜케 선생님은 많은 도움과 지도를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솔직히 남우주연상 수상은 제게 무척 뜻밖입니다. 영화가 관객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처럼, 절대 자신의 인생에 한계를 두지 마세요. 23년 전, 2차원 시티에 막 도착했을 때 저는 막노동도 하고, 식당 일도 하고, 택시도 몰았습니다. 지금 적지 않은 나이에 처음으로 시상대에 서게 되었지만, 저는 언제나 자신에게 다시 시작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PS: 내일 시상대에서 상을 받을 때는 감독의 원고를 보고 읽을 것)
——1988

좀 웃기다. 공원파랑 거래할 때도 안 걸렸고, 코인에 투자할 때도 끄떡없었는데, 당차게 연예계에 뛰어든 지금 오히려 합리적 절세 때문에 보안국에 꼬투리를 잡히다니. 뭐, 일이 이렇게 됐으니 일단 튀어야겠다.
——1992

탈세를 저지른 불량 연예인으로 낙인찍혔으니, 영화는 더 이상 찍을 생각은 말아야겠지. 하지만 괜찮다. 난 원래 연기자도 아니었고, 그건 그저 횡재한 후 일시적인 변덕이었을 뿐이니까. 요 몇 년간 모아둔 출연료와 광고료로 대형 호텔 16곳, 카지노 7곳, 스튜디오 9곳에 투자했었다. 난 더 이상 연예계에 몸담지 않을 거다! 하지만 이상 낙원의 연예계는 언제나 내 거야.
——1996

끝났다, 다 끝났어! 절멸 대군이 왔고, 이상 낙원이 무너졌다! 내 호텔, 내 회사, 평생 힘들게 모은 내 원보! 하아, 좀 살만하면 다시 밑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지다니. 한 번, 또 한 번, 그리고 또 한 번. 마치 내가 평탄하게 잘 사는 걸 방해하려고 웃음 신이 절멸 대군까지 불러낸 것 같다. 이제 내 나이 쉰, 인생의 황혼기가 다가오는데 수중에 가진 게 아무것도 없네. 내 반평생의 우여곡절이 그저 시시한 농담에 불과했던 것 같다.
——1999

「페르디도역」에서 스튜를 팔기 시작했다. 수십 년 만에 요리하는 데다 환경도 열악해서 결과물은 엉망진창이었다. 하지만 이재민들은 배가 고파 미칠 지경이었는지 다들 맛있다고 칭찬했다. 미각이라곤 없는 녀석들. 아무튼 덕분에 돈을 좀 벌어서 빈털터리 신세는 면했다. 웃음 신이여, 이번엔 또 날 어떻게 무너뜨릴 셈이지? 정말 기대되네.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