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고 느린 소리•백룸즈
신비로운 방에 갇힌 어느 불운한 녀석이 남긴 기이하면서도 달관한 시구

느리고 느린 소리•백룸즈

나는 척박하고 머나먼 변방에서 홀로 아스트로폴리스의 도시에 당도해 시곗바늘 고탑에서 일했다.

처음엔 그저 내 힘으로 먹고살려고 했을 뿐인데, 운명이 이토록 험난할 줄이야. 백룸즈에 들어갔다가 결국 갇혀버리고 말았다.

그곳은 회랑이 겹겹이 이어지고 벽이 두꺼우며 불빛은 어둡고 문이 어지럽게 얽혀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적막하여 마치 출구가 없는 듯하니, 그제야 다급히 사방으로 살길을 찾아 헤맸다.

홀연히 그림자가 나타나 등불을 들고 다가와 자세히 살펴보니, 어릴 적 옛 벗이었다.

그는 내 손을 잡고 탄식하며 말했다. 「이곳은 태초의 외진 곳이라 다들 떠나려 하지만, 밖을 떠도는 것이 도리어 화가 될 줄은 모르는구나. 끝없는 회랑을 헤매는 것보다 서로를 지키는 편이 낫거늘」

그 말을 듣고 나니 막혀 있던 것이 뚫린 듯 문득 깨달음을 얻어, 이에 ≪느리고 느린 소리≫ 를 지었다.

시에 이르길,

복도는 겹겹이, 벽은 음산하며, 수많은 벽과 등과 문이로다.
희미한 빛 속 둘러봐도 갈 곳 없고, 외로이 홀로 갇혀 있네.
탁자 하나 의자 몇 개 나뒹구니 어찌 벗어날까, 두려움이 타오르네!
문득 그림자 일어 다가온 자를 보니, 옛 지인이로구나.

아스트로폴리스는 평안하다 듣고 이곳에 왔건만, 온갖 고초만 겪었네.
탑 아래의 망령이요, 생산라인 위의 사람이라.
돌아가자니 고통만 더하고 길마저 없을진대, 어찌 발버둥 치리오?
그대 따라 머무니, 한 뼘 외진 곳에서 속세의 티끌 멀리하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