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은 「출세」가 부정적인 단어라고 말합니다. 저는 누구나 악행으로 선행을 베풀 자각이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들어가며.
처음 우리는 플라스틱 모형 사업을 했습니다. 그때는 「펄럭스 그룹」이라 불리지 않았죠. 세상에 존재한 건 그저 이름 없는 「펄럭스 스튜디오」였습니다. 여담이지만, 우리 설립자의 성은 사실 「스타럭스」였어요. 스튜디오를 등록할 때 같은 이름을 쓸 수 없어서 「펄럭스」로 바꿨어요.
그렇게 한 시대가 저물었습니다. 모형 스튜디오 「펄럭스」는 수만 가지의 인기 장난감을 만들어 냈지만, 다른 산업에는 끝내 진출하지 않았습니다. 진정한 변화는 제2대 회장 「맥스미스」의 임기 때 찾아왔습니다. 그는 우리를 위해 스타피스 컴퍼니 「전략투자부」의 투자를 유치했고, 제법 이름이 알려졌던 모형 스튜디오를 일류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탈바꿈시켰습니다.
하지만 모든 일이 순탄할 수만은 없는 법이죠. 「펄럭스 스튜디오」에서 「펄럭스 그룹」으로 성장한 뒤, 우리는 당연하게도 「시장개척부」의 압박에 직면해야 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이상 낙원의 원년 주주라고 여겨, 전략투자부의 영향력이 자신들을 넘어서는 걸 원치 않았어요. 맥스미스는 49세의 나이에 살인 사건으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당시 광기에 빠진 환조종 하나가 고가도로 위에서 그가 운전하는 차를 향해 돌을 던졌어요. 주행 속도가 너무 빨랐던 탓에 맥스미스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죠. 그 환조종 역시 조사원들이 도착하기 전에 붕괴되어 한 무더기의 진령으로 변해버렸습니다.
맥스미스 이후, 「펄럭스」는 오랜 혼란기를 겪으며 한참동안 전략투자부의 증자에 의존해 생존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19대 회장 「토마스」의 지휘 아래 상황은 결국 안정되었습니다. 토마스는 「펄럭스」에 합류하기 전부터 이미 이상 낙원에서 꽤 유명한 엔터테인먼트 프로듀서였으며, 「펄럭스」의 지분을 확보한 뒤 여러 기획을 성공적으로 추진했고, 이후 그룹 직원의 처우를 대폭 개선했습니다. 일련의 조치로 우리의 내부 결속력은 눈에 띄게 강해졌으며 시장개척부의 저임금 전략을 무너뜨렸고, 단숨에 이상 낙원 엔터테인먼트 시장에서 우리의 지배적 지위를 확고히 다졌습니다.
토마스는 50년간 성실히 일하고 85세에 은퇴했습니다. 당시 「펄럭스」는 이미 인터스텔라 미디어 그룹이 되어, 「이상 낙원」의 모든 대중 엔터테인먼트 프로젝트에 관여하고 있었습니다. 토마스의 뒤를 이어 켄트 씨가 잠시 회장직을 맡았고, 그다음이 저, 페드로•쿠와바라입니다. 제가 그 최고 천재의 후손이라는 말도 있지만, 그건 성씨 때문에 생긴 오해일 뿐입니다. 제21대 회장으로서 그룹에 큰 공헌을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굳이 하나를 꼽자면, 여러분을 위해 제22대 회장 「펄」을 선택한 것 정도겠죠. 하지만 이 결정이 옳았는지는 시간이 검증해 줄 겁니다…. 그녀뿐만 아니라, 여러분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