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게 물든 석판
크렘노스성 교외에서 발견된 파손된 기록. 용맹하게 싸운 크렘노스 전사의 최후가 기록되어 있다

붉게 물든 석판

1
부족 사람들은 일기를 쓰는 게 크렘노스 전사가 할 만한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듣기만 해도 오크마인처럼 나약해 보인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은 죽음이 두려워서 일기를 쓰는 게 아니라는 걸 모른다. 난 그저 우리가 영광을 맞이해도 그것을 전할 사람이 없다는 게 걱정될 뿐이다——

아, 됐다. 올 것은 결국 오게 될 테니까. 일단 쓰자.

……

22
분쟁의 권속의 신의 의지가 갈수록 흐릿해지고, 일부는 크렘노스족 사람에게 칼을 겨누기 시작했다. 하, 걸어오는 싸움을 피할 수는 없는 법이지.

이 권속은 정말 단단해서 두 사람이 붙어야 벨 수 있다. 그러나 놈은 단칼에 우리를 벨 수 있다.
아, 선혈 꿀 음료가 마시고 싶다.

……

35
같은 부대 사람이 권속에게 도검을 겨누면 니카도르의 노여움을 사지 않을까 걱정했다.

하, 니카도르의 노여움을 산다니, 웃긴 농담이었다. 다들 신나게 웃자 농담한 사람이 왜 웃는지 물었다.
첫째, 그가 화나지 않은 상태여야만 노여움을 살 수 있다.
둘째, 분쟁의 티탄과 분쟁을 일으키는데, 그가 분노하겠는가?
셋째, 니카도르는 화를 내나 안 내나 별 차이가 없다.

그는 알아듣더니 우리와 함께 웃었다. 정말 웃긴 농담이었다.

……

47
꿈에서 돌아가신 왕을 뵈었다. 세상을 떠나신 지 수년이다. 왕세자의 방법은 품위 있을지 몰라도, 우리는 인정할 수 없다.
왕이 가리키면 전사는 따른다. 이것이 우리의 소원이다.

……

49
큰 전투로 몇 명을 잃었다. 창을 던졌지만 안타깝게도 구할 수 없었다. 친구들, 영령전에서 기다리고 있어.

……

55
농담 하나가 떠올랐다. 잊어버리기 전에 얼른 적어두자.
미치광이 신이 성대한 연회를 열었는데, 용맹한 자만 참여할 수 있었다. 초대받지 않은 자는 누구일까? 오크마인.
누구도 토를 달지 못할 것이다. 상관없다.

……

78
칼이 부러졌지만 괜찮다. 크렘노스의 모든 것이 전쟁 병기가 될 수 있으니까.

……

83
경미한 상처를 입었지만 큰일은 아니다. 아직 싸울 수 있지만, 한 손으로 일기를 쓰는 게 좀 불편하고 귀찮을 뿐이다.
석판 좀 잡아줄 사람이… 없나? 나만 남은 건가…?

……

85
여기 전사가 하나 있다. 가장 젊고, 다리 한쪽을 잃었으며, 활을 쓴다. 정말 좋은 녀석이다. 석판을 받쳐 주니 쓰기가 훨씬 편하다.

……

93
하, 젊은 전사들에게는 저 안개 같은 검은 그림자가 안 보이는 것 같다.
타나토스? 우리의 신앙은 이미 광기에 빠졌으니, 그에게 끌려가는 게 나쁘지 않을지도.

……

102
권속, 권속이 엄청 많다. 그것들은 정말 싸움에 질리지도 않나 보다. 나처럼.
전사가 니카도르를 만나러 갔다. 아니면 타나토스인가? 누군들 무슨 상관이겠는가. 나 대신 동료들에게 안부를 전해주길.
받쳐 주지 않아도 글을 쓰는 것에 적응이 되기 시작했다.

……

100몇이더라?
또 권속이다. 녀석의 몸에 있는 저건 내 창이다. 권속에게도 복수하겠다는 생각이 있는 걸까?
녀석은 나를, 나는 녀석을 보고 있다. 하지만 너무 빨개서 잘 안 보인다.
또 꿀 음료가 마시고 싶어졌다. 최근에는 오리지널 맛을 너무 많이 마셨으니, 입맛을 좀 바꿔봐야겠다.

녀석은 두려워하는 건가? 팔이 하나밖에 안 남았지만, 여전히 석판에 아무 글이나 쓰고 있다.
정말 웃기는군. 도망가라. 미치광이 신의 권속, 너는 크렘노스인이 될 자격이 없어.
분쟁
영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