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계의 즐거움
서연 선생이 창작한 괴담 소설집

서문

난 300년 동안 이야기로 생계를 유지해왔으나, 이에 대해 책을 쓰거나 이론을 정립하는 일은 거의 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사람을 대신해 곡예를 소개하는 읽을거리나 젊은 작가들을 위한 서문을 쓰곤 했으나… 글로 써서 출간된 이야기는 한 편도 없었다.

이는 아마도 내가 문자를 신뢰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언어는 조억 년 전 인류가 탄생하자마자 존재한 나비이며, 문자는 언어의 무미건조한 표본에 불과하다. 얼핏 보면 아름답지만 자세히 볼수록 시체처럼 느껴진다. 난 내 생생한 언어를 해치고 싶지 않았기에 글을 쓸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내가 이 문집을 출판한 이유는 단지 이야기를 기록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에 얽힌 기묘한 인연 때문이다.

그날은 늘 하던 대로 불야후에서 이야기를 했다. ≪삼겁연의≫에 나오는 대목인데, 구체적으로 어떤 회차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내가 「다음 대목을 기대해주세요」라고 말하자마자 어떤 화외지민이 일어나서 박수를 쳤던 기억이 난다.

그 화외지민은 챙이 넓은 모자를 쓴 여자였다. 챙을 푹 내리고 있어서 얼굴 윗부분은 보지 못했고, 입가에 걸린 유쾌한 웃음만 보았다. 다른 청중들은 그녀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라 그녀를 돌아봤다. 그녀는 전혀 개의치 않고 내게 다가왔다. 「서연 선생님, 전 줄곧 선생님의 작품을 좋아했어요」

난 그녀의 목적을 알 수 없어서 경계하며 대답했다. 「당신은 처음으로 제 이야기를 들으러 오신 것 같은데요」

「네, 맞아요」 여자는 괴로운 듯 고개를 숙였다. 「왜 오늘에서야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었을까요? 제 친구가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선생님을 계속 몰라뵀을 거예요…. 제 사과를 받아주세요」

그녀의 이상한 칭찬에 감사할 새도 없이 그녀가 오른손을 드는 걸 보았다. 그제야 그녀의 손에 흰 천으로 덮인 새장이 들려있다는 걸 발견했다.

「선생님은 『역사』를 『전설』로 바꾸는 재능을 가지고 계세요」 그녀는 내 거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새장을 내 앞 탁자에 두었다. 「이 앵무새의 힘까지 더해지면 호랑이가 날개를 단 격이 될 거예요」

난 뒤돌아서 떠나 그녀를 불러 세웠다. 「아가씨, 이건 너무 귀한 선물입니다…. 이유 없이 이런 선물을 받을 수는 없어요……」

「아니에요. 많은 걸 해주셨는걸요」 그녀는 걸음을 멈추고 돌아서서 챙 아래로 반짝이는 눈빛을 드러냈다. 「선생님의 『이야기』는 이 메마른 역사에 색을 더해줄 수 있어요」

……

이 앵무새의 기질을 파악하는 데 열흘이 넘게 걸렸다. 그 사이 앵무새는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다. 하마터면 그 아가씨의 성의를 망칠 뻔했다.

이 앵무새는 나만 친근하게 여기는 것 같다. 다른 사람을 보면 스트레스를 받아 죽은 새처럼 경직된다. 새가 놀라지 않게 천으로 새장을 덮어놓는 수밖에 없었다. 외출할 때도 데리고 나가야만 했다. 오래 혼자 두면 견디기 힘들어하기 때문이다. 공포와 스트레스로 인한 경직이 나타났다.

그래서 난 어디를 가든 흰 천을 덮은 새장을 들고 가야만 했다. 불야후, 자미성, 시장… 마치 행위 예술을 하는 사람처럼 매드로고두윈매이어의 거물들과 일적인 이야기를 나눌 때에도 새를 데리고 가야 했다.

그 아가씨가 날 괴롭히기 위해 이걸 줬다는 걸 거의 확신할 때쯤, 녀석은 마침내 내게 심상치 않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처음에 난 이 앵무새의 기억력이 매우 좋다는 것을 발견했다. 녀석은 내가 한 이야기를 듣기만 하면 다 외울 수 있었다. 하지만 이건 특별하다고 할 수 없다. 지금은 말을 하는 짐승이 흔치 않지만 난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그런 동물을 꽤 많이 봤다. 게다가 이건 앵무새였으니, 말을 아무리 빨리 배운다 해도 평범한 앵무새의 「본능」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곧 난 앵무새가 내 이야기를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외우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처음엔 「암기」였지만 얼마 후 「복창」하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스토리를 일부 변형시키기도 했다. 난 앵무새가 수정한 내용이 상당히 괜찮았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녀석은 원작을 더 설득력 있게 만들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앵무새는 내가 하지 않은 이야기까지 하기 시작했다. 어떤 것들은 거리에서 나와 함께 들었던 것 같고, 또 어떤 것은 내가 들어본 적 없는 이야기도 있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독자들은 이 앵무새의 지혜가 뛰어나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사실 난 앵무새에게서 이야기를 쓸 만한 지능이 있다고 느낀 적이 없다.

녀석은 날지도, 울지도 않았다. 기분이 좋을 때는 쉴 새 없이 이야기를 하고 기분이 나쁠 때는 새장에 숨어서 화를 냈다. 어느 날엔 집에 돌아오니 새가 내 책상으로 날아와 거위처럼 뒤뚱거리며 내 손 쪽으로 다가왔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새를 손으로 안아 올린 순간, 녀석은 곧장 내 손바닥에 변을 보곤 날아가 버렸다.

이렇게 단순한 생명체가 복잡한 이야기 줄거리를 이해할 리 만무하다.

난 녀석의 행동이 언제나 앵무새의 「본능」을 넘어서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알다시피 앵무새는 자신이 뱉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른다. 다만 수만 년의 진화를 통해 사람의 말을 모방하는 능력이 점점 발전해 스스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마른잎나방이 자신의 「의태」가 마른 나뭇가지와 똑같다는 걸 알고 있을까? 내 앵무새는 내가 하는 이야기가 무슨 뜻인지 모를 것이다. 심지어 내가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할 수도 있다.

고민 끝에 녀석이 내게 들려준 이야기를 글로 적어 다른 사람에게 들려주기로 했다.

나는 몇 달 동안 녀석의 이야기를 들으며 재미있는 몇 가지를 기록했다. 편찬 작업이 끝난 뒤 원고를 들고 새에게 물었다. 「이 책 제목으로 뭐가 좋을까?」

새는 원고를 밟으며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날 바라보더니, 목의 깃털을 다듬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 깃털은 봉황의 깃털과 같고, 그 부리는 하늘의 곡을 노래할 수 있구나. 날개를 접고 붓을 놓으면 절대 울지 않고, 홀로 타계의 즐거움이라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