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만 들리고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세르세스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는 주변을 둘러보며 자신의 가장 특별한 제자에게 느긋하게 대답했다.
「너의 꽃말은 뭐지?」 「안타깝게도 난 꽃이 아니라 나무야」 「음……」
이 대답은 상대방을 만족시키지 못했다. 불만과 아쉬움이 섞인 소리가 들려오자 그녀는 어쩔 수 없이 한 마디를 덧붙였다.
「음, 비유하자면… 『지성』이라고 해야겠지」
그래도 목적을 거의 달성했다. 아마 이 근처겠지? 이제 미끼를 찾아 그녀를 낚아야 한다.
「…지적이면서 낭만적이라고?」 「그건… 내가… 겨울잠을 자서 그런가? 봐. 긴 꿈속에서 난 수많은 연인과 약속했거든」 「……정말이야?」
나비 소녀가 세르세스 앞에 있는 덤불에서 폴짝 뛰어오르자 그녀는 깜짝 놀랐다. 둘의 거리가 완전히 좁혀졌기 때문이다. 가까이서 네스티아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반짝이는 입술이 눈에 들어오자, 세르세스의 얼굴은 눈치채기 어려울 정도로 살짝 붉어졌다. 물론 동요는 한순간이었다. 세르세스는 양손으로 소녀의 허리를 감싸고 무를 뽑듯 화단에서 그녀를 들어올렸다.
「물론 거짓말이지. 잡았다」
그녀를 땅에 내려놓고, 거목의 화신은 잎으로 나비의 날개를 쓰다듬으며 상대의 상태가 정상이라는 걸 확인한 후에야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그래서… 이제 말해 줄래? 왜 날 피하는 거야?」 「……」
「너희 둘, 우리 집 안틸라 화원에서 소란 피우지 말아 줄래?」 차가운 목소리가 때아니게 울려 퍼지며 두 사람의 생각을 끊었다. 꽃바다의 주인, 죽음의 화신에게 이런 생기 넘치는 분위기는 천적과 같았다.
「죄송해요…. 지금 바로 떠날게요. 제 하소연을 들어줘서 고마워요, 타나토스 씨. 세르, 우리 나무 정원으로 돌아가자」 「그래…… 귀찮게 해서 미안해, 타나」 「너희 둘은 정말이지… 휴, 근데 세르세스」 「……?」 「…너도 눈치챘을 텐데?」
씁쓸한 맛이 다시 입안에 퍼졌다. 세르세스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며 옛 친구에게 작별을 고했다.
나무 정원으로 돌아가는 길에 네스티아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세르세스가 한 번 물어봤지만 아무런 답을 듣지 못했다. 그녀는 말을 꺼낼 기회를 잡지 못하고 발밑의 길만 쳐다보는 수밖에 없었다.
——귀에 거슬리는 수군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천재… 그게 뭐 어때서? 그녀는 마치……」 「너무 무서워…」
엄숙해 보이는 자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바로 ███, 짜증을 유발하는 원흉이었다. 네스티아는 세르세스를 향해 미소를 짓고 몸을 돌려 떠났다.
███은 나비 날개 소녀가 떠난 방향을 날카로운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시선을 세르세스에게로 돌렸다.
처음은 업무적인 보고와 무미건조한 잡담이 이어지다가 인신 공격 같은 논쟁이 벌어졌다——
「네가 뭘 알아……?」 「알 필요 없어. 직설적으로 말할게, 세르세스——」 「학생, 심지어 자신의 창조물과 사랑에 빠지다니, 이게 정상이야——?」 「퍽!」 이성의 화신은 처음으로 감정에 휘둘렸다. 손바닥이 남은 촉감은 마치 나무의 심장을 태울 듯이 화끈거렸다.
멀지 않은 곳에서 익숙하면서도 낯선 발소리가 들려왔다. 세르세스는 즉시 쫓아가려고 했지만, 귓가에 울려 퍼지는 말이 발길을 잡았다. 그녀는 넋이 나간 상태였다. 소녀의 그림자가 머릿속에 계속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그녀의 결심이 확고해졌을 때는 이미 세 번째 종막시가 지난 후였다. 거목의 화신은 금빛 고치에 다가가 소중한 사람의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얼어붙은 것처럼 굳어버렸다.
——나비 소녀가 이곳에 살았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나뭇잎 탁자 위의 글은 소녀가 그녀를 위해 쓴 처음이자 마지막 연애편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