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화자의 수기
로토파고이 학파의 엄명으로 다른 학파에 공개 금지된 기록. 어떤 익명의 학자 말에 따르면, 「가문의 수치를 외부에 알릴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환화자의 수기

로토파고이 학파 학자 케레시우스

나는 내가 진실을 봤다고 확신한다. 아니, 어쩌면 그 열매들이 내 판단력에 영향을 주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건 내가 직접 봤으니 틀림없다. 이로 인해 문제가 생길지도 모르지만, 반드시 기록해야 한다.

어제 정원에서 샘플을 채집하다가 이상한 식물을 발견했다. 무척 아름답게 생겼다. 거위의 목처럼 우아하면서도 제멋대로 구부러지는 덩굴이었는데… 빛나면서 새하얀 여린 꽃잎도 있었다! 마침 그 열매가 맺힐 때를 보게 되다니 참 운이 좋았다. 그 보라색 열매를 삼키니 무척 달고, 형언할 수 없는 향이 느껴졌다. 다만 얼마 후 뭔가 이상했다. 감기라도 걸린 것처럼 목이 아프고 머리가 무거워졌다. 이 계절에 화원에서 찬바람을 그리 오래 쐬었으니 감기에 걸린 것이다!

서둘러 숙소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화원을 지나가던 중에 불가사의한 광경을 보게 되었다.

메데이아 현인이 홀로 달빛 아래에 서 있었다. 그녀는 내 기척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았다. 난 그녀의 그림자가 마치 나무의 성장 궤적처럼 뒤틀리고 뻗어나갔다가 몇 호흡만에 압축되는 모습을 봤다. 그녀의 팔은 가지가 되었고, 머리카락은 덩굴이 되었으며, 피부에는 나이테 같은 가는 무늬가 생겨났다. 게다가 놀랍게도 그녀는 처음 들어보는 속삭임으로 주변의 식물과 대화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로토파고이 학파가 식물의 성질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현인은 식물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 자체가……

그녀 자체가 바로 식물이었다…. 그러니까… 애초에 그녀는 인간이 아니다!!!

그렇다 해도 그녀는 인간으로 변신한 식물이니… 약칭으로 불러도 괜찮지 않을까? 잠깐, 나무 정원의 고전 서적에 비슷한 기록이 있는 것 같다.

알겠다!!!!!

[글씨가 갑자기 휘갈겨져 있다]

누가 왔다. 복도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아니, 저건 발소리가 아니라… 나뭇가지가 바닥을 스치는 소리 같은데?

그녀가 나를 발견했다! 그녀는 내가 그녀의 비밀을 알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니, 이건 그녀의 「비밀」인가, 아니면 우리 학파의 비밀일까…… 잠깐, 그녀는 왜 그때 그렇게나 열성적으로 나를 영입하고, 내게 식물 연구에 재능과 열정이 있다며 칭찬했을까? …설마… 설마 나도 메데이아 학자처럼 될 수 있나? 실마리가 잡히는 것 같다……

[뒤쪽 내용은 모두 비어 있다]

[수기의 마지막 페이지에 메모가 한 장이 끼워져 있는데, 분명 다른 사람의 필체이다]
이 수기는 광력 3745년 기연의 달에 지혜의 화원 관목 덤불에서 발견되었다. 조사 결과, 케레시우스는 당일에 강력한 환각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진 환형초 열매를 먹은 것으로 확인되어 휴양을 가게 되었다. 부디 조속히 회복하기를 빈다.
——로토파고이 학파 문서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