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우의 일기
단정사 연단사 책임자 단우의 일기. 일기에 맹인 연단사와 운명의 싸움이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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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궁의 사명님, 제 말 좀 들어주세요

우비는 일기에 고민을 적는 제 행동이 어린애 같다고 비웃지만 이건 어렸을 때부터 계속해 온 습관이고 전 천궁의 사명님께서 이를 정말로 봐주실 거라 믿어요

당신은 자신이 보고 싶은 모든 걸 볼 수 있으실 테니까요. 사실 저 같은 건 애초에 태어나지 말아야 할 사람인데 지금은 이렇게 풍족하게 살고 있네요. 게다가 우비 같은 친구까지 사귀게 되다니. 이 모든 게 천궁의 사명님의 은혜가 아닐까요?

그래서 제가 요즘하고 있는 일들이 당신의 권능을 침범하는 게 아니길 바라요…. 이건 절대 당신이 가호하는 선주 세계에 불만을 느껴서가 아니에요. 그저 진짜 세상과 진짜 색깔을 보고 싶은 것뿐이죠.

어렸을 때 학교에서 전 눈이 멀었다는 이유로 아이들의 괴롭힘을 받았어야 했죠. 하지만 전 이 모든 게 천궁의 사명님이 저에게 주신 시련이라 믿었어요. 그 뒤로 학당에 간 뒤에도 학업 빈도를 맞추기 위해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을 들여야 했지만 그때도 이건 천궁의 사명님이 저에게 주신 시련이라 믿었죠

제 강인함에 상을 내려주신 걸까요? 당신은 제게 우비를 내려주셨죠. 7살 되던 해, 우비가 절 괴롭히던 아이들을 쫓아버린 뒤로 저희 두 사람은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답니다.

우비는 제가 아이들의 괴롭힘을 당하지 않도록 절 지켜줬고 제 학업이 뒤처지지 않도록 도와줬어요. 방학이 될 때면 우비는 절 데리고 여러 생태계 동천의 유명 관광지로 절 데리고 가 그곳의 아름다운 경치를 생동감 넘치는 언어로 저에게 설명해 주었죠. 우비의 목소리는 마치 손가락 끝을 스치는 시원한 시냇물처럼 부드러웠던 걸로 기억해요.

솔직히 지금의 제 삶에 불만을 가진다는 것 자체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겠죠.

하지만… 인간은 시각에 의지하는 동물이에요. 빛과 그림자 그리고 색깔로 세상의 만물을 판단하죠. 전 우비가 말한 「석양이 나무 사이의 하늘을 붉게 물들여 마치 불이 난 것 같다」는 풍경이 어떤 건지 이해할 수 없어요. 아니, 우비가 어떤 모습인지도 몰라요. 우비의 얼굴을 만져보고 상상해 봤지만 그 얼굴을 완벽하게 만들어내는 데는 실패했죠.

그래서 우비의 응원을 받아 전 빛을 다시 되찾기로 했어요.

천궁의 사명님의 은혜 덕분에 전 단정사 최고의 연단사가 되었고 우비는 단정사의 최고의 의사로 성장했죠. 우리 두 사람이라면 절 이 영원한 고통속에서 벗어나게 해 줄 방법을 찾을 수 있지도 몰라요.

……

그렇게 저와 우비는 수많은 방법을 시도해 봤지만 딱히 순조롭지 않았어요.

그 중 첫 번째는 바로 비침입 방식으로 의안을 제작하는 거죠. 제 기계팔도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진 거랍니다. 지금은 평범한 사람들처럼 팔을 움직일 수 있죠.

이론적으로 이 방법은 분명 시각장애를 가진 천결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있어요. 하지만 저처럼 신경 발육이 덜 된 천결자에게 「비침입」 방식은 통하지 않는 것 같았어요.

두 번째로 시도한 방식은 「나비의 꿈나라」의 원리를 이용해 사물을 보는 것이었어요. 나비의 꿈나라는 여우족의 페로몬을 이용해 통제 가능한 환상을 만들어내는 거죠. 어쩌면 이 페로몬을 이용하면 「눈」이라는 광학 신호 수신기를 통하지 않고 화면을 직접적으로 대뇌로 전송하지 않을까 짐작했어요.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광학 신호를 직접 대뇌로 전송하는 데는 성공했어요. 하지만 제 머릿속에서 「도형」을 만들어내는 건 실패했죠. 이 방법을 통해 저는 인생에서 처음 색깔과 형태를 「볼」 수 있게 되었지만 그것 중 무엇이 「붉은색」이고 무엇이 「원형」인지 구분할 수 없었어요.

나비의 꿈나라는 체험자의 감각 기관에 의지해 환상을 만들어내죠. 하지만 저는 단 한 번도 눈으로 무언가를 본 적이 없으니 분명한 형태를 만들어낼 수 없는 거고요. 그렇게 여우족의 페로몬을 사용하는 방법도 실패했죠.

이상하죠? 이 방법으로 수많은 「색깔」을 보긴 했지만 전혀 기쁘지 않았어요.

저희가 세 번째로 시도한 방법은 다른 감각 기관을 이용해 「감각 기관 대행」 작용을 유도하는 거예요. 우비의 아이디어인데 「비침입식 의안」의 연장이라고 볼 수 있죠. 쉽게 말하면 시각 신호를 청각, 촉각, 미학, 후각 신호로 전환시켜 다른 감각 기관을 통해 새로운 「시각」을 만들어내는 거예요.

이 계획을 바탕으로 저희는 프로토타입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어요.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무게를 줄일 수 없다는 거였죠. 센서만 해도 제 무게의 3배 정도로 그 기기를 멘 상태로는 길을 걷기 조차 힘드니 테스트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죠.

그럼에도 저희는 수많은 테스트를 진행해 봤어요.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이 기기는 단명종에게 더 어울릴 것 같아요. 단명종의 대뇌는 아주 강력한 가소성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감각 기관 대행」으로도 감각 연결을 실현할 수 있죠. 즉, 한 감각 기관의 작동으로 다른 감각 기관의 감각을 더 쉽게 이끌어낼 수 있다는 말이죠. 단수종들이 이런 기기에 익숙해진다면 아주 리얼하게 색깔, 형태, 거리를 「맛보거나」 「듣거나」 「냄새를 맡을」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대뇌의 가소성이 비교적 약한 장수종(예를 들면 저) 같은 경우에는 시각을 단 하나의 새로운 감각으로 변환시키는 게 아주 힘들어요. 예를 들면 매운맛을 느끼면 나무가 푸른색이라는 걸 알 수 있고 차가운 향을 느끼면 나무가 원추형이라는 걸 알 수 있긴 하죠. 하지만 전 결국 그 사물을 직접 「본」 건 아니잖아요? 「푸른색」이 도대체 어떤 색인지도 잘 모르고요.

비록 단명종에게 더 적합한 기기라고 말씀드리긴 했지만 단명종은 침입식 의안으로 대부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니 굳이 이렇게 복잡한 방법을 쓸 필요는 없을 것 같네요.

이 시험에 저와 우비는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였지만 아무런 수확도 얻을 수 없었어요. 그리고 저희의 시험이 미래의 학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도 확신할 수 없죠.

너무 실망스럽고 속상해요. 그리고 무엇보다 우비에게 미안하네요.

……

지식학회의 이근 박사님과 대화를 나누던 도중 그분이 이상한 제안을 하시더군요. 이근 박사님은 그 방법을 「취소주의 요법」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취소주의」는 아주 오래된 철학 사상이에요. 인간의 모든 감정은 호르몬과 전기 신호로 인해 생성된다고 주장하는 학문이에요. 이근 박사님의 주장은 아주 간단했어요. 천결자의 고통을 근본적으로 없앨 수 없다면 고통 그 자체를 소멸시키는 게 어떠냐는 거였죠.

약물 펌프를 사용해 특정 시간마다 체내에 일정 약물을 주사하면 일정 기간 동안만큼은 육체의 결함을 느끼지 않을 수 있으며 이 세계의 모습을 「보고 싶다」는 욕망도 사라지고 지금 제 삶이 불행하다는 생각도 하지 않게 되는 거죠.

괴이하긴 했지만 시도해 볼 만한 방법인 것 같았어요.

하지만 실험 결과 이 방법도 장수종에게는 통하지 않는 걸로 나타났어요.

장수종의 호르몬은 엄격한 균형 상태를 이루고 있어 외력으로 체계를 파괴하려고 할 경우 강력한 부작용을 일으키게 돼요.

약 2시간 정도는 「지금 제 삶도 좋은 것 같은」 기분이 들긴 했지만 그 뒤에는 면역 폭풍으로 죽을 뻔했죠.

……

그 뒤에도 수많은 시험을 진행했지만 성과는 얻지 못했어요. 너무 실망스럽네요.

하지만 전 어떻게든 우비의 얼굴을 보고 싶어요. 그래서 우비 몰래(우비는 이렇게 황당한 이유로 무모한 선택을 하는 건 허락하지 않을 테니까요) 이근 박사님께 의안을 장착해달라 부탁했어요.

전 드디어 제 모습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어요. 처음으로 우비의 얼굴도 보게 되었죠. 우비의 검은 단발은 마치 비단결처럼 부드러웠고 흰 피부는 주명에서 가장 좋은 백자보다 더 빛났어요. 검은 구슬처럼 반짝이는 눈은 피로와 슬픔으로 인해 잔뜩 충혈된 모습이었고 끊임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죠.

제 눈을 바라보던 우비가 물었어요. 「단우야, 이게 뭘 의미하는지 알아?」

저도 물론 알고 있었죠. 이 눈은 결국 거부반응으로 인해 점점 제 몸에서 떨어져 나갈 테고 그 과정에서 전 엄청난 고통을 견뎌내야 하겠죠. 역사 속에서는 이 고통 때문에 마각의 몸에 빠진 사람도 있을 정도니까요.

그리고 전 잠시나마 얻었던 모든 걸 잃어버리고 다시 어둠으로 돌아가게 되겠죠.

하지만 전 우비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우리가 갔던 관광지로 다시 가보자. 네가 나한테 말해줬던 풍경을 직접 보고 싶어」

10일 후 우린 함께 인공 석양이 동천의 가짜 하늘 뒤로 사라지는 걸 직접 목격할 수 있었죠. 거부반응은 점점 더 심해졌지만 우비가 곁에 있어서인지 별로 고통스럽게 느껴지지 않았어요.

석양은 나무 사이의 하늘을 붉게 물들여 마치 불이 난 것 같았어요.

그날 밤 전 핏더미 속에서 포효했고 결국 끝없는 어둠 속으로 돌아가고 말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