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바다 별뗏목승람 • 주명 선주
선주의 유명한 비행사 백주가 남긴 기행집 중 한 편. 그녀가 주명 선주로 간 일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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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조할머니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살아생전 주명(朱明)의 불을 못 보면, 별바다를 누벼서 무엇하겠나.」

하하, 돌이켜 보면 증조할머니는 이런 속된(이렇게 말해도 되나?) 표현을 정말 많이 하셨다. 「살아생전 탈라사의 크리스탈 궁전을 못 보면」, 「살아생전 피어포인트를 못 보면」, 「살아생전 스크루룸별을 못 보면」…. 어쨌든, 그분이 칭찬한 모든 곳엔 멋진 풍경이 있었기에 가볼 만한 가치가 있었다. 그곳이 연맹의 영역이라면 비행사로서 안 가 볼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강제로 이곳으로 보내지기 전엔 주명 선주는 최대한 피하는 게 상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가 뭐냐고? 그곳은 사방이 고온에, 불이 나는 용광로 같다는 선입견 때문이었다.

훈련 첫날부터 천박사(天舶司) 교관에게 「털이 많으면 불에 약하다」는 말을 수없이 들었다. 임무 전 방화 연고를 바르는 건 여우족 비행사에게 필수 작업이었다. 그러니 내가 「주명」 선주를 두려워할 수밖에 없지 않겠나?

하지만 주명으로 가는 날을 피할 수는 없었다. 요청(曜靑) 「학우위」가 오웬리 등 주변 행성에서 풍요의 백성과 교착전을 벌이며 주력군의 공세를 저지하자, 군무부는 병력과 무기 지원을 요청하기 위해 나와 나머지 12명으로 사절단을 꾸린 후, 수송선에 태워 「주명」으로 보냈다.

창밖으로 상상만 하던 용광로를 처음 보게 되었다. 아니, 그곳은 용광로와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주명 선주는 정교하게 조각된 황금빛 연꽃 같았다. 푸른빛 항성의 은은한 빛 아래, 거대하고도 빛나는 잎들이 원뿔형 줄기를 둘러싸고 겹겹이 펼쳐져 있는 그 모습은 정말이지 평화로웠다.

「여기도… 선주라고? 아무리 봐도 학회 기록에 묘사된 『천상의 배』 같지 않은데.」 내 마음을 대변하기라도 하듯 곁에 있던 지식학회 교류 학자가 질문인지 감탄인지 모를 말을 했다.

「그러게요, 이 배를 만든 장인들은 형식과 정의에 구애받지 않은 듯하네요.」 웃음이 나왔다. 7천여 년 전 출항한 거대한 이주 선박이 주민들에 의해 환골탈태했다니. (철학에도 비슷한 명제가 있었는데… 뭐였더라, 폴카의 배? 스크루룸미우스의 배?)

뭐, 그도 그럴 것이 사람은 누구나 가본 적 없는 곳에 선입견을 갖기 마련이다. 나 역시도 그랬지 않았는가?

내가 상상했던 주명 선주는 크고 투박한 용광로로, 근육질의 장인들이 불꽃을 튀겨가며 쇠망치를 두드리는 곳이었다. 내 무지함에 사과한다. 문명이 발달하지 못한 세계를 여러 곳 방문하다 보니 선주의 뛰어난 공조 기술을 완전히 잊고 있었다. 주명은 모든 선주를 통틀어 가장 정교한 배였다.

「광명천」의 별뗏목 항구에 들어서자 더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곳에 들어서자마자 연못에 발을 담그는 것처럼 시원했고, 빛은 여과된 듯 은은했다. 별뗏목이 오가는 플랫폼은 끝도 안 보일 정도로 거대한 월장석을 통으로 깎아낸 듯했다. 더 놀라운 것은 이를 구성하는 구조물이 마치 광석이라는 몸에 자연스럽게 생겨난 금속 혈자리처럼 아주 정교하게 항구와 맞아떨어졌다는 점이었다.

자유분방하면서도 긍지가 느껴지는 이 솜씨는 주명 선주에 대한 외부인의 선입견을 바꿔놓기 위한 것임이 분명했다.

게다가 사절단을 맞이하러 공조사 장인들을 이끌고 온 열댓 살처럼 보이는 어린아이였다.

「회, 회염 사부님께서 저보고 여러분을 모셔 오라고 하셔서….」

소심하고 앳된 목소리에 뾰족하지 않은 귀를 보니 발육이 늦은 비디아다라 「애늙은이」는 아닌 듯했다. 그럼 이 아이가 회염의 제자라는 건데, 대체 어디서 이런 천재 소년을 데려온 걸까?

「주명 공조사 장인… 응성이 사절단 여러분께 인사드립니다. 회염 사부님은 무기 정비로 바쁘셔서 절 대신 보내셨답니다. 실은… 저도 일이 많은 데다 선인들처럼 오래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라서요. 그러니 빨리 일정을 마칠 수 있도록 협조해주세요.」

이 꼬마 장인이 단명종이라고? 이제 놀라는 것도 지칠 지경이었다. 주명 선주는 대체 어디까지 날 놀라게 할 생각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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