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 레벨 Lv.40 개방
「나는 탐험가의 신분으로 이 별에 왔다. 난 늘 그랬듯 강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통계하고, 거리에 있는 벽돌과 기와의 재질은 무엇인지, 경사가 가장 심한 길은 몇 도인지, 그리고 굴뚝의 개수와 분포를 조사할 것이다…. 이런 작업은 한 행성의 「기억」을 보존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상상에 부합한다
——하지만 이걸로는 한참 부족하다
내가 뒤에서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했을 때부터 그 소녀를 자주 봤다. 때로 햇빛이 나뭇잎 사이를 지나 그녀의 모습에 따라 흔들리다가 어느 길모퉁이에서 사라지면 가로등이 켜지곤 했다. 또 어떤 때는 그녀의 시선이 전서구를 따라 움직이면, 매주 셋째 날 저녁마다 전서구가 대사제의 거처에서 출발해 다음날 새벽 황궁 호위대장에게로 돌아갔는데, 둘은 공개적인 정적이었다. 그리고 때로 그녀가 조용히 하수도로 내려가는 빗물을 보고 있으면, 건너편에서 발사한 대포로 인한 파괴의 흔적이 생겼다. 또 가끔 물보라가 그녀의 치맛자락을 적시면, 강가에서 빨래를 하던 노부인은 선대 권력자와 그의 다섯 사생아에 대한 이야기를 중얼거렸다.
——우리 외에 행성이 이런 방식으로 자신의 「기억」을 감춰둔다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나는 그녀를 따라 어느 황야에 있는 돌 앞으로 갔다. 나는 그녀를 초대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뭐가 보여?』 난 그녀가 볼 수 있는 모습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그녀는 잡초가 자란 곳을 가리켰고, 그곳에는 무언가가 갈린 흔적이 남아 있었다.
『돌. 원래 벽난로의 일부였겠지만… 그뿐만이 아닐 거야』
난 고개를 끄덕이곤 그녀를 도와 돌 틈 사이로 자라난 잡초와 흙을 치웠다.
『기념비이기도 했네』 그녀는 돌에 새겨진 흔적을 매만졌다.
『맞아. 하지만 「기억」은 그뿐만이 아니야』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황야의 돌은 한때 누군가의 집에 있던 벽난로였고, 그전에는 하나의 기념비였고, 화단이었고, 제단이었으며… 더 오래전에는 어느 황야 위의 돌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이런 「기억」을 보려면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할까?』
『네가 모습을 보이기 전까지 사람들은 너의 존재를 모를 거야』
『사람들이 흑조를 보기 전까지는 세상에 백조만 있는 줄 아는 것처럼?』
『그렇지』」
——어느 탐험가의 기억기억하는 자들은 수많은 행성을 돌아다니며 모든 길과 모퉁이에서 도시의 기억을 수집한다. 그들은 도시가 기억하지 못하도록 절대 자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다만 기억하는 자의 자질을 갖춘 사람을 만나 그들을 이 도시의 기억에서부터 더 넓은 바다로 데려간다면 예외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