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류

과거 나부 검술의 일인자이자 운기군 불패신화의 창조자.
오늘날 그녀의 이름은 역사에서 지워졌고, 마각의 몸의 경계를 걷는 선주의 역적이 되었다

검, 길이는 3척 7촌에 무게는 공기처럼 가볍다.
평범한 철이 아닌 단단한 얼음이 형체를 이루고, 은은한 빛을 품고 있어 달빛 한줄기를 손에 쥔 것만 같다.

「검, 길이는 3척 7촌에 무게는 일곱 근이 넘는다. 손에 쥐고 날카로운 끝을 적을 향해 내지른다」
무장한 여자가 가볍게 손짓하자 검은 살아있는 것처럼 검집채로 무기 거치대에서 회전하며 날아올라 여자의 손아귀에 들어가더니 검집에서 나와 여자아이의 옆에서 웅웅거리며 검명을 일으킨다.
「할 수 있겠어? 할 수 있다면 보리인이 지상전에서 가장 자주 쓰는 전투 요수 혈안의 애자(睚眦)를 10마리 처치해. 그럼 첫 번째 수업은 끝나는 셈이지」
그녀는 말없이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이날 그녀는 구출되고 나서 처음으로 병실에서 나와, 살면서 처음으로 검이라는 무기를 만져 보았다.
「의료진에게 물러가라고 했어. 내 명령 없이 그들은 널 찾으러 오지 않을 거야」
「창성이 재난에 빠져 살아남은 사람이 얼마 안 돼. 구조대가 도착하기 전에 네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난 몰라…. 하지만 네가 이렇게 평생 과거의 공포에 갇혀 있는 꼴은 보고 싶지 않구나」
「대답할 필요 없어. 검으로 대답하면 되니까」
「그걸로 우리의 모든 것을 앗아간 괴물들을 모조리 없애버려. 이렇게 놀라운 물건은 이제 세상에 얼마 안 남았지」
무장한 여자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여자아이 옆의 장검으로 시선을 돌린다.

거울 같은 검날에 그녀의 모습이 비친다. 날카롭고 고통스러운 파편들이 폭풍처럼 날아올라 여자아이를 과거로 끌어들인다——
어두운 하늘에는 나후(羅睺)라는 이름의 불길한 별이 비명을 지르고 노래를 부르며 불타는 산맥과 대지를 끼고 사람들을 향해 돌진했다.
거리에 있던 사람들은 울부짖으며 종말의 절망 속에서 몸부림치며 뒹굴었다. 금빛 덩굴이 사람들의 입과 코에서 쉬지 않고 자랐다.
그녀는 꼼짝도 하지 못하고 이 모든 것을 지켜봤다. 오장육부가 끓어오르더니 잘 익은 낟알이 껍질에서 나와 무한히 팽창하는 것처럼, 무언가가 그녀의 몸 속에서 솟구쳤다.
하지만 다가오는 산맥을 보며 그녀는 자신이 곧 신의 가벼운 손가락 놀림에 죽게 될 하루살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죽음이 임박한 순간, 그녀는 옆에 있던 유일한 부초를 움켜쥐었다.
검, 길이는 3척 7촌에 무게는 일곱 근이 넘는다.

검, 길이는 6척 5촌에 무게는 14근이다.
이것은 두 손으로 휘둘러야 하는 운기군의 검이다. 칼날에 불의 힘이 담겨 있어서, 적을 상대하는 순간 기계짐승의 불활성 외갑을 벨 수 있다.
그리고 전투를 돕는 비검 12자루가 혈도 [대추]에서 [양관]까지 연결되어 있다. 마음에 따라 움직이는 비검들은 질풍노도와도 같다.
그녀는 검술에 아직 익숙하지 않다. 그녀는 배워야 할 게 많다.

무장한 여자는 곧 군을 이끌고 출정해야 해서 그녀를 더 가르칠 겨를이 없었다. 그렇게 소녀의 두 번째 수업은 전장의 쓰러진 적들 사이에서 이루어졌다.
「찌르기」는 간단명료하지만 동작이 민첩한 괴물들이 검끝을 향해 달려들 리 없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베기」를 익혔다.
「휘감기」, 무시무시한 힘을 지닌 괴물 앞에서 소녀는 검날의 반대 부분으로 공격을 무력화하는 법을 터득했다.
그녀는 검술을 깨우쳤다는 생각에 자신보다 10배 큰 기계짐승 병사 「용백」의 몸 위에 뛰어 올랐다.
가지고 있던 모든 검이 부러졌지만, 상대의 거대한 몸에 상처만 남길 뿐이었다. 괴수의 거대한 손이 그녀를 강타했다. 그녀는 피바다가 된 전장에 누워 다시 한번 공포에 잠식됐다. 죽음이 임박한 순간에서야 그녀는 검술에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글거리는 화염을 장전한 화살이 용백의 머리를 터트렸다. 「일어나」 무장한 여자는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 검술 안 배울래요. 검은… 쓸모가 없어요」
「쓸모가 없다고? 나한테는 아주 유용한데. 검을 쓰는 사람이 쓸모없는 거겠지」
「……」
「검술을 배우지 않겠다면 뭘 배우고 싶은데? 비행사 별뗏목의 연석전, 신의 팔에 장착된 화염 석궁? 아니면… 주명 선주의 주명화? 이 무기들이라면 저 요사스러운 별을 없애기에 충분하지. 뭘 배우고 싶어? 만나기도 전에 상대를 죽일 수 있어」
「…그저 왜 제가 검술만 배워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장군부터 병사까지 모든 운기군은 검을 배우는 것부터 시작해」
「공조사의 무기들은 널 대신해 적을 죽여줄 수 있어. 하지만 그 무기들은 자동으로 움직일 뿐이지. 화살이 다 떨어지고, 별뗏목이 추락하고, 금 조각상이 멈춰 서는 날이 오면 누가 우리를, 선주를 지켜줄까?」
「이 검을 쥐고 내 말 똑똑히 들어. 운기군이 직접 검을 들고 출전해야지만 인간의 전투라고 할 수 있는 거야. 우리의 피와 살로, 우리의 힘으로 저 기계 흉물들에게 보여줘야 해. 기계 따위가 우리를 대체하지 못한다는 것을!」

무장한 여자는 그녀와 부러진 검을 연무실에 남겨두고 떠났다.
검, 길이는 2척 1촌에 부러진 칼날만이 남아있다

검, 길이는 5척에 무게는 삼천 근에 달하는 것만 같다. 새카만 칼날엔 핏빛이 어려 있다.
검은 천외의 금속을 거듭 담금질해 만든 것으로, 정상적인 무기의 범주를 완전히 벗어난 것이었다. 검은 그것을 단조한 단명종 장인처럼 거칠고 오만하기 짝이 없었다.

늘 검만 가까이했던 그녀에게 친구가 여럿 생겼다.

그녀가 검술의 일인자에 오르는 날, 취임식에 참석한 검은 옷을 입은 장인이 검을 던졌다. 검은 땅속 깊이 가라앉고 검자루만 남았다. 사람들은 크게 놀라 웅성거렸다.
「내가 만든 검은 나부 운기검수(劍首)만이 제대로 다룰 수 있소」그는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달처럼 고고하고 오만한 나부 용존은 그녀의 신들린 검술을 보고 승부를 가리고 싶다는 마음을 먹게 됐다.
창과 검의 싸움이 여러 해 이어졌지만, 승부가 나지 않았다. 결국 그녀가 현룡대우전에서 단숨에 바다를 가르고 나서야 용존은 그녀를 인정했다.

별바다를 오가는 견문이 넓은 한 무명객이 그녀를 위해 별바다 저편의 감주를 가져왔다. 둘은 감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하늘의 반짝이는 별들을 바라봤다.

「난 하늘의 별도 벨 수 있어」
그녀는 아직도 술에 취해 했던 호언장담을 어렴풋이 기억한다.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 그 불타는 별, 그때는 헤어나올 수 없었던 끔찍했던 악몽이 이제는 더이상 무섭지 않다.
검과 함께하면서 그녀는 처음으로 살고자 하는 의지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그 전까지 그녀는 죽음이 다가오길 기다리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그녀의 제자.
그녀는 그와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그는 나이는 어리지만 꾀가 아주 많은 아이였다. 그는 그때의 자신과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스승님께서는 왜 검에 집착하십니까? 적을 죽일 수 있는 무기는 수천 가지에 이릅니다. 그 별을 없애는 거라면 선주의 주명화로도 가능할 텐데요」
「시인에게 왜 시를 쓰냐고 묻는 것 같은 질문이군.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은 많지만, 나한텐 이것뿐이야」
이제 그도 운기군의 걸출한 인재가 되었다.

그녀는 이제 스승이 없다. 무장한 여자는 전사해 더이상 그녀를 가르칠 수 없다.
그녀도 이제 스승이 필요하지 않다. 그녀는 검의 모든 것을 통달했다. 검은 몸의 일부이자 삶의 모든 순간을 함께하는 숨결이 되었다.
사람들을 그녀를 「무결의 섬광」이라 불렀다. 수 세기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검객의 최고봉이라 했다. 하지만 그녀는 「하늘의 별을 베기」에 아직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녀가 쥐고 있는 게 선주 제일의 보검이라 해도……
검, 길이는 5척에 무게는 삼천 근에 달하는 것만 같다. 새카만 칼날엔 핏빛이 어려 있다

검, 길이는 5척에 무게는 삼천 근에 달하는 것만 같다. 새카만 칼날엔 금이 가득하고 검 끝은 온데간데없다.
비 내리듯 몰아치는 전쟁 속에서 그녀는 전우, 제자와 함께 이 검을 휘두르며 천족의 배로 쳐들어가 전쟁을 관망하던 수장인 늑대의 목을 떨궜다. 한번은 구름 위로 높이 솟은 비공성에 올라 페더 가드들의 날개를 갈기갈기 찢었다. 또 한번은 후이늠의 말발굽에 맞서 다리 여섯 달린 준마를 모는 자들을 모조리 잡아다 감옥에 처넣었다… 그녀의 검이 겨누는 흉물에겐 죽음이나 패배가 주어질 뿐 그 외에는 있을 수 없다.
하지만 그녀도 자신의 검이 생사를 나눈 지기에게 향할 줄은 예상치 못했다.

그녀는 숨을 헐떡이며 간신히 만신창이가 된 몸을 지탱한다. 저 멀리 동천에서 비통에 찬 용의 포효가 해방을 갈구하듯 들려온다.
광기에 찬 장인이 진탕 속으로 떨어지는 걸 지켜보던 그녀는 넋이 나간 것처럼 그 옆을 지나간다.
「널 먼저 죽여야 하지만… 넌 다른 죄도 짊어져야 해, 영원히……」
그녀는 부러진 검을 용존에게 겨눈다.
「불가능해. 용의 군사들이 그러더군… 내 일족의 피, 내 선조의 혼으로 다른 용존을 만들겠다고. 모든 게… 이렇게 흘러가선 안 됐는데」
「널 희생시켜 모든 걸 되돌릴 수 있다면 난 기꺼이 그렇게 할 거야… 하지만 지금은… 그 용의 역린이 있는 곳을 알려줘」
「두개골……」

반은 용의 형체를 한 흉물이 번개처럼 하늘을 누비다 해평선도 뒤덮을 거구로 부유섬 하나를 산산조각 내고 천 개의 검이 부딪히는 것 같은 울음소리를 낸다.
그녀는 자신의 단부가 펄펄 끓는 걸 느꼈다. 잘 익은 낟알이 껍질을 까고 나오려는 것처럼 팽창했다.
그녀는 또다시 어린 시절의 악몽에 갇힌 자신을 보았다. 불길한 별이 머리 위에서 떨어지고 하루살이는 발버둥 칠 힘도 없다.
여인은 치마폭에서 검은 비단을 죽 찢어 두 눈을 가렸다.
천둥 번개가 친다. 그녀는 검을 들고 뛰어올라 악룡에게 맞선다.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할 수 없는 환각 속에서 그녀는 드디어 피와 살이 극한을 뛰어넘어 붕괴되는 걸 느꼈다. 현에 구속된 것처럼 사지는 팽팽히 당겨지고 그녀의 마지막 의식은 갈기갈기 찢기는 것 같다.
그러다 갑자기 귓가에 울리는 한 마디.
「하늘의 별도 내가 베겠어」

그 순간, 그녀는 꿈에 그리던 검을 쥐었다.
모든 속박에서 해방시켜줄 검. 오랜 세월을 함께 해온 검.
평범한 철이 아닌 단단한 얼음이 형체를 이루고, 은은한 빛을 품고 있어 달빛 한줄기를 손에 쥔 것만 같다.
검, 길이는 3척 7촌에 무게는 공기처럼 가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