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의

선주 「나부」의 「시왕사」 판관 중 하나로 체포, 구금, 처벌, 심문, 4부문 중 「체포」를 담당한다.
쇠밧줄과 파마추를 지닌 그녀는 지치는 일 없이 흉악범을 찾아 체포한다.
과거의 육신은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인형의 몸에 「환생」하여 범죄자 한 명을 체포할 때마다 반나절을 얻는다

「시왕의 심판, 업보 불변」

눈처럼 하얀 옷을 입은 판관이 으슥한 골목에서 천천히 걸어 나와 그의 마지막 길을 가로막았다.

남자는 더 가까이 다가갔으나, 떨리는 그의 목소리에서 공포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왜… 그놈들 몇 명 잡은 걸로는 부족한가 보지?」

「왜」라는 말로 시작됐지만, 그의 말은 의문이 아니라 반문에 가까웠다. 의미 분석이 머릿속을 계속 맴돌지만, 「목표가 공범의 말로에 대해 확실히 알고 있다」는 것 외에는 별다른 정보가 없었다.

그녀는 즉시 주어진 사명을 이행하기로 결정한다.

눈, 관자놀이, 턱, 심장, 단부, 아랫배… 그녀는 일격에 치명타를 입힐 수 있는 급소를 순식간에 파악했다. 상대는 민첩하기로 유명한 여우족이지만, 허점투성이이니 아마도 한 번… 많아도 두 번의 공격이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일격은 실패하고 만다.

판관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그를 응시한다. 남자의 근육은 마치 쥐라도 돌아다니는 것 같이 쉴 새 없이 들썩이고, 두 눈은 계획이 성공했다는 듯이 반짝이고 있다.

그는 급병에 걸린 것처럼 헐떡인다. 걷잡을 수 없는 고통 속에서 비명을 지르던 그의 온몸에 솜털이 자라고, 사지와 몸이 보이지 않는 어떤 힘에 의해 부풀어 오른다. 동천의 달빛 아래, 거대한 늑대인간이 몸을 일으킨다. 이때 판관의 눈에 인체를 둘러싸고 있는 그 새빨간 윤곽이 들불처럼 타오른다.

「너… 스스로 무덤을 파는구나」 내면 깊은 곳의 습관으로 그녀는 한숨을 쉬려 하지만, 그녀의 몸에는 이제 그런 기능이 없다. 「약왕의 비전 약을 먹어봤자 죽음을 재촉할 뿐이야」

남자의 눈빛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다. 「어차피 너희에게 발각된 그 순간부터 나는 이미 시한부였어」

여우족 남자는 옆에 있던 약주머니를 움켜쥐고 콩을 들이붓듯 더 많은 약을 입안에 털어 넣는다. 「너희처럼 피도 눈물도 없는 것들이 어떻게 이해하겠어. 내게는 반드시 이곳을 떠나야만 하는 이유가 있단 말이야!」

거대한 주먹이 순식간에 커지며 단번에 시야를 가득 메운다. 판관의 반응 기교는 아슬아슬하게 대응한다. 두 팔을 흔들자 그녀가 지니고 다니던 쇠사슬이 팽팽하게 원을 그리며 그 주먹을 감싸려 한다.

엄청난 힘이 실린 주먹이 가슴팍을 향해 날아들자, 백의의 판관이 딛고 서 있던 땅은 마치 거미줄처럼 갈라지며 움푹 꺼진다.

기계 장기가 부서지는 소리가 가볍게 났을 뿐, 통증은 없다. 백의의 판관은 한동안 정신이 아득했다

「설의 님, 이 몸은 틀렸어요. 제… 제가 새로운 인형으로 옮겨드릴게요. 이 과정에서 좀 혼란스러울 수 있는데, 조금만 참으세요」

그녀와 명관 곽향 사이에서 비슷한 대화가 이미 수도 없이 반복됐다. 그녀는 예전과 똑같이 대답했다. 「고마워. 이번엔 튼튼한 걸로 골라줘」

곽향의 귀가 움직이는 게 보인다. 속상하다는 표현일까? 그녀는 알 수 없다. 그녀의 눈은 볼 수 있지만, 감정을 분별할 능력은 없다…. 어쩌면 이건 눈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가장 뛰어나고, 튼튼하고, 가장 민첩한 부속품을 전부 설의 님의 몸 안에 넣었는데도 설의 님의 부상률과 손상률이 부서에서 가장 높아요…. 심문부의 장인들이 불평하기 시작했다고요」

「네가 다 조립하면, 난 바로……」

「…저것들의 머리를 『가볍게』 두드려주겠다는 거지?」 익숙한 목소리가 산산조각 난 그녀의 몸 옆에서 들려왔다. 「저것들은 아직 피와 살을 지닌 평범한 몸이라 그런 장난은 못 견뎌」

늘어진 긴 머리카락이 그녀의 얼굴을 덮었다. 그녀의 인조 피부에서 방해 신호가 방출됐다. 그녀의 내려다보는 얼굴은 독립적인 오관에서 그녀에게 익숙하고 친근하기 그지없는 얼굴로 합쳐졌다.

「언니, 기교의 몸은 늘 자신이 강철 같이 단단하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곤 해. 하지만 난 환생하는 휴일로 너무 빨리 망가진 언니의 몸을 때워야 한단 말이야. 그러니 다음에 사명을 이행할 땐 언니를 걱정하는 동생이 있다는 걸 기억해줬으면 좋겠어」

「기억할게」

「그래도 안 되면 곽향에게 언니의 머릿속에 이 말을 새겨 놓으라고 할… 아, 괜찮아, 곽향. 농담이야. 난 언니가 기억할 거라고 믿어」

「그럼 설의 님, 이제 시작할게요」

그녀는 자신이 잘리고 복제되어 수천 개로 쪼개져서 시왕사의 수많은 회로에 업로드되는 것을 느꼈다.
순간 그녀는 인과의 전당에 새겨진 수많은 기록을 읽었고, 선주 사람의 영혼의 전모를 잠시 살펴본 후 다시 기억을 잃었다.
다음 순간, 그녀는 주위의 금 조각상•저승사자의 몸에 들어가 금속 몸체의 강인함과 옥조 속의 흔들리지 않는 의지를 느꼈다.
천 개의 눈이 생겨난 그녀는 기계새의 날개와 시선으로 별뗏목의 바다 사람들을 굽어보았다……
천 개의 귀가 생겨난 그녀는 무한한 주파수에서 파형의 변화와 날카로운 소리를 들었다……
그녀의 천 개의 손은 명관의 몸에서 업보의 판결을 써 내려가고, 천 개의 발은 낯선 거리를 바삐 걸었다……
그녀는 이 순간 자신이 시왕사 옥조 회로 속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또 모든 곳에 존재하며 점점 흩어져 간다는 걸 느꼈다……

「언니… 언니!」

또다시 익숙한 목소리가 성문의 파형을 넘어 들려왔다. 기억 하나가 그녀를 단단히 속박했다. 백의의 판관은 한동안 정신이 아득했다

「언니… 언니!」

그녀는 자신이 푸른 하늘 아래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놀랐다. 주변엔 무성하게 자란 보리 이삭이 넘실댔다.

그녀는 웃으면서 잔가지와 일찌감치 주워 둔 꽃을 한데 엮어 품 안 여자아이의 머리 위에 얹어줬다. 고개를 돌린 아이는 꽃보다도 더 환하게 웃었다.

그녀는 아이의 얼굴을 꽉 끌어안고 영원히 이 섬세하고 연약한 얼굴을 보호하고, 그녀를 위해 많은 일을 하겠다고 맹세했다.

「언니… 언니!」

잠시 정신을 잃은 사이, 이 얼굴은 넓어지고 커졌다. 그 수려한 오관에는 그녀의 보호가 필요한 연약함이 사라지고, 강인한 모습뿐이었다. 이 얼굴은 예전에 그녀와 함께 걸었고, 함께 별뗏목에 올라 역외를 원정했다.

모래바람, 서리, 진흙 자국… 시간은 이 사랑스러운 얼굴에 많은 때를 묻혔지만, 그녀의 손은 언제나 부드럽고 섬세하게 모든 것을 닦아낸다.

그녀와 마찬가지로 여동생은 어른이 되었다. 사람들 앞에서 노심초사하는 어머니처럼 그렇게 얼굴을 닦아주어서는 안 된다는 건 알지만, 그렇다고 어찌 쉽게 놓을 수 있을까? 영원히 이 얼굴을 보호하겠다고, 많은 것들을 해주겠다고 맹세한 것을.

「언니… 언니!」

그녀는 화염과 피가 가득한 그을린 땅에서 고개를 들었다. 땅에는 수천 개의 익숙하지만 생기를 잃은 얼굴이 있었고, 그중 여동생의 얼굴도 보였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얼굴은 찾을 수 없었다.

「난 그녀를, 너희 모두를 구할 수 있어. 손안의 가지를 가볍게 흔들기만 하면, 백골에 다시 피와 살이 생기고, 꽃잎이 흙먼지 속에서 꽃술로 돌아가게 할 수 있어. 너도 잘 알잖아」

그녀의 몸 아래에는 천 개의 얼굴을 가진 이상한 나무가 그녀와 모든 사람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그것이 가지를 흔들자, 가지와 줄기는 대지에 깊숙히 박혔다.

「나는 찰나이자 영원이다. 너희는 나로부터 진정한 장생을 얻으리라」

그녀는 눈물을 삼키며 눈을 감았다. 저항할 여력이 없었다. 이 순간 그녀는 거대한 나무의 보잘것없는 열매일 뿐, 웅장한 뿌리에 항변할 수 없었다.

불타는 거대한 검이 하늘에서 내려와 공기 중에 퍼진 달큰한 썩은 냄새를 모조리 태웠다. 갑옷을 걸친 우람한 남자가 유성처럼 전쟁터에 떨어져 노호하며 거대한 나무를 향해 돌진했다. 그 이상한 나무는 마치 꽃처럼 다시 한번 피어났고, 금빛 가지가 맹렬히 자라나 숙적을 칭칭 얽어맸다.

「죽음을 극복할 때마다 더없이 기뻐. 그들과 마찬가지로 네 육신은 보잘것없지만, 네 고통은 날 기쁘게 할 수도 있지」

가지는 날카롭게 웃으며 모든 머리가 자신을 대신해 한 글자씩 뱉도록 만들어 문장을 완성했다: 「등효, 이번엔 뭐로 날 죽일 셈이지? 정말 기대되는군」

「나 자신으로」 남자는 담담하게 대꾸했다. 그의 등 뒤로 금빛 환영이 거대한 칼날을 하늘에서 대지로 내리꽂았다.

「언니… 언니!」

외침이 절박해진다. 그녀는 자신이 다시 선별되고 삭제되고 합쳐져 좁고 한정된 자아 속에 갇히는 것을 느꼈다.

「소위 말하는 명부 판관, 시왕의 칙사도 별거 아니구나」

꿈에서 깬 사람이 으레 그렇듯, 그녀는 자신의 몸으로 돌아왔지만, 방금 전 꿈을 잊어버렸다. 백의의 판관은 한동안 정신이 아득했다

백의의 판관 귓가에 여우족의 쉰 웃음소리는 늑대의 울부짖는 소리처럼 들렸다.

남자는 조직에서 가장 귀한 단약을 수십 알 가져갔다. 이제 보니 그는 실전 경험이 부족한 것 같다. 한 알만 먹어도 눈앞의 판관을 산산조각 낼 수 있으니 말이다.

「결국 기교는 한계가 있는 법이지…. 무한한 잠재력을 지닌 우리 장수종의 몸만 못 해」

여우족은 웃으며 손을 빼내려고 하지만 꿈쩍도 하지 않는다. 여러 번 감긴 쇠사슬이 거미줄처럼 그의 팔을 칭칭 감고 있다.

얼굴을 가린 흑발 사이로 판관의 눈이 번쩍였다. 여우족은 그 표정에서 사냥감의 피 냄새를 맡은 맹수의 모습을 떠올렸다. 「『오장신(五藏神)』, 내 기교 장기가 부서졌어. 동정심을 담당하는 부분이 약해졌지」

「…무슨 소린지 모르겠군!」 여우족은 손가락을 갈퀴 모양으로 구부려 맹렬하게 공격했지만, 삼각 가시에 손바닥이 뚫려 울부짖는다.

「원래는 너를 성한 상태로 감옥에 보내 재판을 받게 하려고 했어. 육신의 고통을 덜어주고 싶었지. 그런데 네가 내 동정심을 파괴했어」

「허세 부리지 마! 네 사슬이 내 몸에 묶여 있는 걸 잊었나?」 덫에 걸린 상처 입은 짐승은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여우족이 쇠사슬을 잡아당겨 백의의 판관을 품으로 끌어들인다. 우람한 근육이 그의 분노에 반응해 올가미처럼 수축한다. 관절이 비틀리는 살벌한 소리가 공기 중에 울려 퍼진다.

「네 말대로 육신의 잠재력이란 무한하다…. 하지만 결정적인 단점이 딱 하나 있지. 고통을 느낀다는 것」

백의의 판관이 웅얼거리는 소리와 남자의 고통스러워 하는 비명이 밤하늘을 가득 메운다.

그녀는 산산조각 난 오른팔을 받친다. 부러진 팔에서 튀어나온 철골이 날카로운 창끝처럼 늑대의 모습을 드러낸 여우족의 턱에 꽂힌다. 주화입마에 빠진 탈주범은 발버둥치지만, 그를 단단히 옭아매는 판관을 뿌리칠 순 없다. 그는 극심한 통증으로 한참을 뒹굴다 마침내 의식을 잃고 축 늘어진다.

「피도 눈물도 없다고?」 옷이 피로 물든 판관은 수배범의 거대한 몸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너희 풍요의 흉물이… 내 동정심을 부순 거야」

그녀는 두개골과 척추, 슬개골을 간신히 원래 위치로 돌려놓은 후, 아무리 애를 써도 붙지 않는 부러진 손을 허리춤에 묶는다.

이번엔 또 동생과 곽향이 얼마나 잔소리를 할까? 내면 깊은 곳의 습관으로 그녀는 한숨을 쉬려 하지만, 그녀의 몸에는 이제 그런 기능이 없다